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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로구 원서동에 있던 마을로서, 창덕궁 요금문 밖에 함춘원이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. 또 창덕궁 밖에 궁을 나온 내명부의 수도처인 정업원(淨業院)이 있었으므로 이곳의 동명을 유학
원동은 현 종로구 원서동의 1936년 이전 명칭으로, 창덕궁 후원이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. 1895년 북부 광화방 관현계 원동 지역이었으며,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개편된 북부 원동 · 관
종로구 신문로1가동에 있던 마을로서, 동령동에서 이어지는 곳으로 야트막한 함춘원의 동산이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. 일명 동산 혹은 동산말이라고도 불렀다. → 신문로1가 [법정동]
종로구 낙원동 · 인사동에 있던 마을로서, 원골이라고도 하였다. → 낙원동 [법정동]
종로구 원서동에 있던 마을로서, 창덕궁 밖에 궁궐에서 나온 내명부들의 수도처인 정업원이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. 원동이라고도 하였다. → 원동 [마을]
→ 원터. 황해남도 청단군 화양리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. 옛날 서원이 있었다. 원동이라고도 한다. 마을 앞에는 자연바위가 많은데, 이 바위들에는 "자주 · 자립 · 자위", "주체"라는 글발들이 새겨
평양시 중화군 충룡리의 동쪽에 있는 마을. 옛날 중화골 원님이 지방순시를 위하여 여러 관리들을 앞세우고 행차했다가 이 마을에 들려 하루 묵어갔다고 하여 원동이라고 불렀다.
평양시 상원군 노동리 동쪽에 있는 마을. 탑고개 동쪽에 위치해 있다. 옛날 원집이 있었다 하여 원동 또는 원골이라고도 하고 가닥나무가 많다 하여 가닥마을이라고도 하였다.